믿음의 가정은 은혜로 세워지는 것입니다 목양칼럼 / 2019년 05월 01일

우리가 알다시피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의 열 두 지파는 야곱의 열 두 아들들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그런데, 사실 이 열 두 아들들이 태어나게 된 스토리는 그렇게 아름답지 못합니다. 일단 야곱은 본의 아니게 삼촌 라반에게 속아서 그의 딸들인 레아와 라헬을 둘 다 아내로 삼게 되었습니다. 실제 사랑했던 것은 라헬이었는데 삼촌 라반에게 속아서 첫날밤을 레아와 보내게 되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두 부인을 두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그 두 부인의 여종 두 사람도 씨받이처럼 야곱의 아이들을 낳았습니다. 그러니까 야곱의 열 두 아들들은 각각 다른 어머니 4명에게서 태어난 것입니다. 아무리 자매지만 레아와 라헬 두 부인 사이에 팽팽한 긴장과 갈등이 끊이지 않았을 테지요. 당연히 그 두 부인의 여종들인 빌하와 실바 사이에도 갈등이 있었을 것이며, 거기서 태어난 배다른 형제들이 서로 갈등하고 견제했을 것입니다.

이런 여러 가지 갈등 속에 있는 야곱 집안의 복잡한 가정 문제를 하나님 안 믿는 주변 사람들도 다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대게 가정에 이런 복잡한 문제가 있는 사람은 자기 가족을 다른 사람들에게 소개하기 싫어합니다. 부모님이 여러 번 결혼했거나 배다른 형제들이 있는 사람은 겉으로 말하지 않아도 속으로는 굉장히 부담스러워하고 부끄러워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야곱 집안이 그랬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왜 이렇게 복잡하고 혼란한 가정을 축복의 가정으로 선택해 주셨을까요? 여기에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의 섭리가 있고, 십자가 은혜의 아름다움이 역사합니다. 십자가 은혜가 아니면 야곱 가정 같은 우리 죄인들은 소망이 없었습니다. 로마서에 보면 이 세상에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고 했습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하나님의 의에 이르지 못했다”고 했습니다. 야곱 가정의 부끄러운 가정사는 그 사실을 단적으로 보여 줍니다. 믿음의 가정이라 하는 집안도 이렇게 흠이 많다. 우리 중 그 어느 가정도 문제 없는 가정 없습니다. 그러나 십자가 은혜를 통하여 한없이 흠이 많은 죄인들도 눈과 같이 희게 되어, 놀라운 축복의 통로로 쓰임 받게 됩니다.

쓰레기 더미 속에서도 피어나는 꽃이 있듯이, 불행한 환경이나 불행한 부모에게서 태어났다고 해서 그 자식이 반드시 불행해 지는 것은 아닙니다. 납달리나 잇사갈 자손들처럼, 불행한 환경에서 태어났지만 하나님의 축복을 받고 보배롭게 쓰임 받는 인생들이 있습니다. 십자가 보혈의 은혜가 그것을 가능케 합니다. 그러므로,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그를 구원하시기로 선택하셨다는 사실입니다. 선택한 사람은 반드시 십자가 은혜로 구원하십니다. 하나님은 사랑받을 자격 없는 사람을 자격 있게 하시고, 희망 없는 사람을 세워서 희망의 사람으로 만들어 주십니다. 혹시 여러분 가정에 부끄럽고 어렵고, 복잡한 사정, 남에게 숨기고 싶은 과거가 있다 할지라도 야곱을 바라보면서 용기를 가집시다. 십자가 은혜 안에서 새롭게 시작하실 수 있습니다.

구약 시대의 대제사장은 이스라엘의 모든 죄를 대신하여 어린양의 피를 들고 지성소로 나아갔습니다. 하나님께로 나가는 대제사장의 두 어깨와 가슴 한복판에 달린 패에는 이스라엘 열 두 지파들을 상징하는 각각 다른 보석들이 박혀 있었습니다. 대제사장은 그 열 두 지파의 이름을 하나하나 부르면서 그 보석들을 만지면서 그들을 위해 하나님께 중보 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보혈의 은혜로 그들의 죄를 용서하시고 그들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셨습니다.

오늘날 우리의 대제사장되신 예수님께서도 그렇게 하십니다. 야곱의 열 두 아들들 같이 죄가 많고 부끄러운 우리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부르시며 보혈의 은혜로 덮어 주시며 중보 하십니다. 우리는 그 은혜로 하나님 앞에 설 수 있는 것입니다. 야곱의 가정으로부터 시작해서 모든 믿음의 명문가는 오직 인간의 죄를 덮어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로 세워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