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서로의 아픔을 메꿔주는 교회 목양칼럼 / 2018년 08월 01일

잘 나가던 개그맨 이동우 씨에게 어느 날 청천병력 같은 상황이 닥쳐 왔습니다. 망막 색소 변성증으로 두 눈을 잃게 된 것입니다. 그에겐 어린 딸이 있었는데, 이제는 그 딸이 그린 그림도, 훗날 그 딸의 결혼식도 볼 수 없을 것이란 절망감에 가슴이 미어져 왔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전화 한 통이 걸려왔습니다. 전화 속의 남자는 자신의 망막을 기증해 주겠다고 했습니다. 더 충격적인 것은 임제신이라고 하는 그 남자는 나무처럼 온 몸이 굳어가는 루게릭병 환자였다는 사실입니다.

다큐멘터리 ‘시소’(seesaw)는 볼 수 없는 남자와 움직일 수 없는 남자가 함께 떠난 제주 여행기였습니다. 볼 수 있는 남자는 자신이 본 것을 끊임없이 보지 못하는 남자에게 얘기했습니다. 그가 본 제주의 바다 풍경 속에는 자신의 삶이 스며 있었습니다. 루게릭병 진단을 받은 후 그는 적어도 1년은 어떻게 하면 죽을 수 있을까 고민했다고 합니다. 누가 이 휠체어를 밀어서 바다에 빠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는 여러 번 고민했습니다. 그러나 결국은 자신도 살아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살아 있으니 이렇게 남에게 잃어버린 눈도 찾을 수 있게 해주는 고귀한 선물도 줄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사는게 아프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요? 모두 멀쩡해 보이지만 다들 속으로는 바위 같은 아픔 하나 둘 쯤은 안고 살아 가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교회가 함께 서로의 마음을 메꿔주는 공동체가 되기를 원하셨습니다. 아픔을 부인하는 게 아니라 솔직히 인정하고 고백하며 형제의 기도와 도움을 요청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도 때에 따라서 형제들이 베푸는 사랑의 도움을 겸손하고 감사한 마음으로 받습니다. 도와 준다고 우쭐한 것도 없고 도움 받는다고 자존심 상할 것도 없습니다. 우리 모두가 한 번 쯤은 남을 도와주어야 할 때가 있고, 또 도움을 받아야 할 때가 있기 때문입니다.

항상 내 자신의 아픔에만 함몰되어 있기 쉬운 우리는 내 옆의 형제 자매의 아픔에 대해서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교회 뿐 아니라 회사와 다른 사회 조직들도 일만 추구하고 서로의 삶의 아픔에 대해 무관심하면 좋은 사람들을 계속 붙잡아 둘 수가 없습니다. 미국의 위프로라는 콜센터는 해마다 전 직원의 50~70%가 퇴사해서 골머리를 앓았습니다. 경영진은 신입사원 교육에서 A팀과 B팀 두 팀으로 나눠 실험했습니다. A팀에게는 일방적으로 회사의 성공신화를 교육했고 끝날 때 회사 로고가 박힌 티셔츠를 나눠주었습니다. 반대로, B팀에게는 “언제 행복을 느끼나?” “일이 잘될 때는 언제인가?” 등의 질문을 던졌고 끝날 때 회사 로고와 직원 이름이 들어간 티셔츠를 선물했습니다. 7개월 후 충격적인 결과가 나왔습니다. B팀의 잔류 비율이 A팀보다 무려 250%나 높았던 것입니다. ‘우리는 너를 생각한다’는 소속 신호는 사소한 듯 하지만 심리적 안정감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것입니다.

여름에는 많은 분들이 가족과 함께 무더위를 피해 산으로 바다로 휴가를 떠납니다. 일년 내내 지친 심신을 추스리고 새롭게 재충전 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이지요. 그러나, 동시에 좀 여유를 가지고 자신의 내면세계를 돌아볼 수 있는 자기 성찰의 시간이기도 합니다. 무엇보다 너무 이기적으로 나만 생각하고 기관차처럼 달려온 인생을 좀 반성할 필요가 있습니다. 교회는 우리가 서로의 아픔과 약점에 관심을 가지고, ‘어떻게 하면 서로 도우며 살 수 있을까’를 연습해 보는 곳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사람들이 이를 보고 내 제자인 줄 알리라”라고 하셨는데, 서로 사랑한다는 것은 서로의 약점을 담당해 주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우리는 모두 불완전한 존재들이지만 함께 있음으로 인해 영혼의 온기를 나누는 사람들입니다. 예수 안에 있기 때문에 우리는 서로를 판단하지 않고 품어줄 수 있습니다. 그래서 행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