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년에 걸친 처절한 광야 생활을 끝내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마침내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뜻밖의 많은 성도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는 것을 우리가 천국 가는 것의 상징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가나안은 천국이 아닙니다. 가나안에 들어가서도 적들이 있었고, 전쟁이 있었고, 고통과 실패도 있었습니다. 천국은 그런 것이 전혀 없는 완전한 안식이 있는 곳입니다. 가나안은 승리하는 크리스천의 삶을 뜻할 뿐입니다. 반대로, 광야 생활은 패배하는 크리스천의 삶을 뜻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기적 같은 은혜로 애굽을 탈출했습니다. 그들이 떠나온 애굽은 우리가 구원받기 전 죄의 노예가 되었을 때를 상징합니다. 그러나 죽음의 바다 홍해를 건넌 이스라엘 백성처럼 우리는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로 구원받았습니다. 문제는 그 다음입니다. 1-2년이면 끝날 수 있었던 이스라엘의 광야 생활이 뜻밖에 40년으로 길어졌습니다. 그들이 자기 안의 옛 사람 애굽을 버리지 못했기 때문이었습니다. 항상 조금만 힘들면 애굽으로 돌아가고자 했고, 애굽의 우상을 섬겼고, 하나님이 인도해 가실 약속의 땅에 대해서 불신했습니다. 그래서 광야에서 출애굽 1세대는 다 쓰러져 죽었습니다. 한 발은 애굽에, 한 발은 가나안에 걸쳤던 이스라엘처럼, 한 발은 세상에, 한 발은 약속의 땅에 걸치고 살아가다가 영적으로 무기력한 패배적 크리스천의 삶을 살아가는 많은 성도들이 있습니다. 구원은 받았지만 구원의 기쁨 없이 그저 하루하루 틀에 박힌 종교의식만 행하고 있습니다. 광야적 신앙생활에 계속 머물러 있는 겁니다.
우리는 더 이상 그런 패배주의적 광야 신앙생활을 계속해서는 안 됩니다. 약속의 땅, 즉 가나안적 승리의 신앙 생활로 옮겨가야 합니다. 가나안은 언젠가 우리가 가게 될 천국이 아니라, 바로 지금 우리가 누릴 수 있는 승리의 삶을 말합니다. 우리가 구원받았을 때 단순히 과거의 죄만 용서받은 게 아닙니다. 우리에게는 엄청난 하늘의 능력이 주어졌습니다. 앞으로 어둠의 권세를 이기고 승리할 수 있는 능력,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해 나갈 능력 말입니다. 우리가 자신의 힘을 믿지 않고 오직 하나님을 의지하며 하나님과 동행하면, 그 능력이 끊임없이 우리에게서 흘러나올 것입니다.
여호수아서에 보면 그렇게 놀라운 하늘의 능력을 가진 승리하는 군대로 변한 이스라엘의 달라진 모습을 봅니다. 그들은 광야에서는 항상 과거를 돌아보았지만, 가나안에서는 미래로 전진합니다. 광야에서는 모세의 권위에 도전하다 무너졌지만, 가나안에서는 여호수아의 권위에 순종하여 승리합니다. 서로 분열하지 않고 리더를 중심으로 한 덩어리가 되니까 적들이 감히 도전하지 못하는 강한 군대가 되었습니다. 광야에서는 승리를 위해 싸워야 했지만, 가나안에서는 이미 주신 승리를 토대로 싸웁니다. 절박한 마음으로 싸우는 것이 아니라 확신을 가지고 싸워 이깁니다. 광야에서 율법으로 훈련받았다면, 가나안에서는 은혜 가운데 안식합니다. 신앙 생활에 평안이 있고 기쁨이 있습니다. 광야에서는 꿈을 위해 인내했다면, 가나안에서는 꿈을 이루면서 찬양합니다. 광야에서는 다른 민족들의 눈치를 보는 연약한 나그네였지만, 가나안에서는 다른 민족들이 이스라엘의 눈치를 보는 주인으로 당당하게 삽니다. 광야에서는 어떻게 해서든 살아남아야 하는 생존이 목적이었지만, 가나안에서는 적을 완전히 물리치는 영광을 누립니다.
광야에서는 불평하던 백성들이 가나안에서는 승리를 선포하는 백성들이 되었습니다. 광야에서는 두려움에 떨던 백성이 가나안에서는 담대히 정복하는 백성이 되었습니다. 어떤 어려운 위기가 닥쳐도 이제는 기도로 이기고, 말씀으로 이기고, 믿음으로 이기는 법을 깨달았기에, 약속의 땅의 풍성함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이런 승리하는 삶이 바로 저와 여러분의 스토리가 될 것입니다.
광야 신앙 vs. 약속의 땅 (가나안) 신앙
목양칼럼 / 2018년 06월 0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