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복음 1장에 보면 예수님께서 가버나움이란 마을에서 하루 만에 많은 기적을 행하시는 장면이 나옵니다. 회당에서 권위 있게 말씀을 전하시자 사람들이 큰 은혜를 받았으며, 열병 걸린 시몬 베드로의 장모를 비롯한 수많은 병자를 고치셨고, 귀신 들린 자들에게서 귀신을 쫓아내셨습니다. 가버나움 사람들은 예수님이 너무 좋아서 계속해서 자기들 마을에만 머물러 주시기를 청했고, 제자들도 그렇게 하시는 게 좋겠다고 주님을 설득하려 했습니다. 우리도 보면 사람들이 우리를 좋아해 주고, 눈에 보이는 열매가 풍성하면 “여기가 좋사오니” 하며 그 자리에 안주해 버리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 유혹에 넘어가면 주의 종들은 조건 좋은 곳에만 머물러 있게 되고, 정말 복음이 필요한 곳으로 가서 섬기지 못하게 됩니다. 교회도 부흥의 절정에서는 그런 영적 이기주의에 빠질 수가 있는데, 그럴수록 정신을 차려야 합니다. 주님은 우리만의 주님이 아니라 열방의 주님이십니다. 은혜를 받았으면 그만큼 이웃과 열방에 흘려보내야 합니다. 가버나움 사람들은 주님을 다른 지역으로도 보내드려야 했습니다. 우리도 받은 은혜를 이웃과 열방과 함께 나눠야 합니다. 그게 전도요, 선교입니다.
예수님은 단호하게 가버나움을 떠나 온 갈릴리에 다니시면서 전도하셨습니다. 본문은 간단하게 말하지만, 당시 갈릴리 연안에는 2백 개가 넘는 크고 작은 마을들이 있었습니다. 이 많은 곳을 예수님이 오직 복음 전파의 목적으로 찾아가셨다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닙니다. 그곳들은 아직 한 번도 복음을 들어보지 못한 곳들이요, 예수님을 한 번도 만나보지 못한 곳들이었습니다. 반면에 가버나움은 이미 예수님이 전파하신 복음을 들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주님이 떠나시더라도 복음을 먼저 들은 사람이 아직 듣지 못한 사람들에게 전할 수 있었습니다. 아마 주님이 계속 계셨더라면 가버나움 사람들은 주님에게 책임을 미루고 제대로 된 증인의 삶을 살지 않았을 것입니다. 주님은 그래서 가버나움을 육체적으로 떠나셨습니다. 이제 먼저 복음을 들은 가버나움 사람들이 주의 손과 발 되어 가버나움 사역을 이어가길 원하셨기 때문입니다.
복음은 물과 같아서 낮은 곳으로 계속 흘러갑니다. 아직 복음을 듣지 못한 영적 불모지는 끊임없이 개척되어야 합니다. 영적인 블루오션을 끊임없이 찾아가야지, 이미 믿던 사람들끼리 아웅다웅하게 되면 교회는 영적 야성을 잃고 시험에 들게 됩니다. 복음은 밖으로 계속 흘러갈 때 힘이 생깁니다. 성령의 역사는 결코 한곳에 머물러 있지 않습니다. 마태복음 24장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이 복음이 모든 민족, 온 세상에 전파되고 나서야 세상의 끝이 올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교회가 얼마나 신실하게 땅끝까지 복음을 전하는 가에 따라서 세계 역사가 결정된다는 뜻입니다. 이를 위해서 교회는 기존의 패러다임을 깨고, 교회 담장 밖으로 나가려는 시도, 과감하게 새로운 지경을 개척하는 모험도 감수해야 합니다.
우리는 가든파이브 새 성전으로 입당하면서 세상 한가운데로 들어온 미셔널 처치가 되었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다양한 전략으로 예수님처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365일 전도하는 교회가 되기를 기도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처럼 전도합시다
목양칼럼 / 2026년 09월 0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