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께서 십자가 죽음을 통해 영원한 생명으로의 부활을 이루신 것처럼, 우리 역시 믿음으로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에 동참하게 되고, 또한 그분의 영광된 부활에 동참하게 됩니다. 부활하신 주님이 계셨던 무덤이 비어 있듯이, 우리가 자꾸 빈 무덤을 다시 채우려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죄를 용서하시고, 우리의 모든 죄와 상처와 실패의 기억들을 망각의 바다에 던져 버리셨습니다. 그리고 ‘낚시 금지’라는 푯말을 붙여 놓으셨습니다. 문제는 그런데도 우리가 툭하면 돌아가서 낚시를 해서 그것들을 건져낸다
는 데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죄를 용서하시고 다시는 기억하지 않으시는데, 우리가 툭하면 과거의 실패를 반복해서 떠올리고, 죄책감 속에 머물고, 옛 습관으로 돌아갑니다. 이것은 빈 무덤을 다시 채우는 일입니다.
십자가 은혜로 구원은 받았는데 여전히 옛사람에게서 완전히 헤어 나오지 못한 안타까운 상태로 사는 성도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죄보다 더 위험한 것은 죄로 물든 옛사람에 대한 애착입니다. ‘나쁜 남자 신드롬’이라고 들어 보셨을 것입니다. 여자들이 본능적으로 착한 남자가 아닌 나쁜 남자에게 매력을 느끼고 끌려든다는 것입니다. 복음을 듣고 예수를 믿고 거듭나게 되면서 죄가 나쁜 것은 확실히 알았습니다. 그런데 머리로는 알겠는데, 몸은 아직 거기서 헤어 나오지를 못합니다. 이것은 빈 무덤을 자꾸 다시 채우려는 삶입니다.
부활의 능력은 단순히 새 삶을 얻는 것이 아니라, 과거의 죽은 것을 다시 살려내지 않는 결단에 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무덤에서 나오셨고, 무덤은 닫혔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옛 관계를 다시 열고 옛 중독을 다시 건드리고 옛 상처를 다시 꺼냅니다. 이러면 영적으로 무기력해지게 되고, 퇴보하게 됩니다. 신앙의 싸움은 죄와 싸우는 것보다, 이미 죽은 것을 다시 살리지 않는 싸움입니다. 십자가는 죄를 용서하는 사건이라면, 부활은 죄의 영향력에서 해방되는 사건입니다. 신앙의 성숙은 단순히 ‘얼마나 회개했는가’가 아니라, ‘얼마나 돌아가지 않는가’에 달려 있습니다.
십자가의 보혈로 거듭나서 더 이상 죄의 노예가 아닌 하나님의 자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죄인 같은 삶을 계속해서 삽니다. 죄로 물든 옛사람이 나쁜 것을 몰라서가 아니라 워낙 거기에 익숙해져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날마다 말씀과 기도를 통해 하나님과 교제하면서 새로운 신분으로 의식화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새로 예수 믿은 사람이든, 신앙생활을 오래 한 사람이든, 말씀과 기도 생활을 습관화시켜야만 합니다. 또한 마귀가 자꾸 우리의 죄악 된 옛사람을 살리려 할 텐데, 이를 사전에 차단하는 비결은 유혹이 오기 전에 먼저 하나님께 헌신해 버리는 것입니다. 나의 시간을 드리고, 재물을 드리고, 재능을 드려 버리는 것입니다. 마귀가 우리 몸을 사용하기 전에 우리 몸을 하나님께 드리는 겁니다. 마귀가 우리 입을 사용해서 나쁜 말을 퍼뜨리기 전에, 우리의 입으로 하나님을 찬양하는 겁니다. 마귀가 우리의 손을 가지고 나쁜 일을 하기 전에, 우리는 이 손을 가지고 남을 돕는 일을 하는 겁니다. 하나님께 드려 버린 것은 마귀가 입맛만 씁쓸히 다실뿐 어쩌지를 못합니다.
옛사람으로 자꾸 회귀하려는 나 자신과의 싸움은 단 한순간의 화끈한 전투로 끝나지 않습니다. 어쩌면 이 싸움은 아마 천국 갈 때까지 평생 지속될 싸움인지도 모릅니다. 순간적인 회개보다 중요한 것은 지속적인 단절입니다. 바울은 “나는 날마다 죽노라”라고 했습니다. 우리 힘으로는 이길 수 없고 오직 순간순간 주의 은혜 의지하면서 이겨내야 하고, 서로 격려하면서 이겨내야 합니다. 우리는 그렇게 함께 부활의 승리를 누리는 교회가 될 것입니다.
빈 무덤을 다시 채우지 마십시오
목양칼럼 / 2026년 05월 0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