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의 겸손의 비밀 목양칼럼 / 2026년 04월 01일

부활하신 주님이 베드로에게 “내 양을 섬기라”는 엄청난 사명을 주셨을 때, 베드로는 요한을 가리키며 “저 사람은 어찌 되겠습니까”라고 물었습니다. 그만큼 베드로는 요한에게 강한 라이벌 의식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요한은 베드로가 없는 많은 장점들을 가지고 있었고, 무엇보다도 주님이 특별히 사랑하는 제자였기 때문입니다.
주님 승천하신 뒤 사도행전의 예루살렘 초대교회를 섬길 때 베드로와 요한은 함께 동역했지만, 항상 요한의 이름이 베드로 뒤에 나오게 됩니다. 오순절 성령 강림 사건 때 교회의 대표로 일어나서 설교하여 3천명을 회심시킨 것도 베드로였고, 그 뒤의 모든 사역에서 교회의 지도자로서 발언하거나 사역할 때도 앞장선 것은 베드로였습니다. 사도 요한이 초대교회의 지도자로 본격적으로 부상하게 된 것은 수십 년 뒤, 베드로가 순교한 다음부터였습니다. 요한은 성령의 인도하심에 민감한 사람이었기에 자기가 나설 때와 물러설 때, 주연이 아니라 조연으로 서야 할 때를 알았습니다. 우리도 항상 주연이 되려는 욕심을 버리고, 하나님의 때가 올 때까지 명품 조연으로 겸손히 섬기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그런데 요한은 원래 이렇게 주연 자리를 쉽게 양보하는 겸손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주님께서 십자가에 돌아가시기 전에 그는 주님의 나라가 임할 때 예수님 좌우에 형 야고보와 자신을 앉게 해 달라고 하던 야심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요한이 언제 어떻게 이렇게 겸손해졌을까요. 그건 요한이 바로 눈앞에서 예수님의 십자가를 경험했기 때문이었을 겁니다. 요한은 주님 십자가에 돌아가실 때 골고다 언덕까지 따라간 유일한 제자입니다. 요한은 자신을 출세시켜 줄 것으로 생각했던 예수님이 십자가에 돌아가시는 것을 보면서 얼마나 충격이 컸을까요. 거기서 예수님을 이용해 출세해 보려던 그의 야심은 죽었습니다.
하지만 그가 상상도 하지 못했던 하나님 나라 비전이 거기서부터 다시 시작되고 있었습니다. 저는 주님이 십자가 위에서 요한을 내려다보면서 무슨 생각을 하셨을까 궁금합니다. 얼마 전까지 예수님의 오른편 왼편에 앉게 해 달라고 불손한 야심을 보였던 제자에게 왜 그런 부탁을 하셨을까요. 우리가 모르는 영의 세계를 보시는 예수님께서는 십자가 앞에서 무너져 내리는 요한의 야심과 성령의 새로운 역사를 보셨음이 분명합니다. 저는 주님의 십자가를 바로 앞에서 지켜보던 요한이 거기서부터 깨지고 변했다고 믿습니다. 갈보리 주님 십자가는 불순한 동기로 주님을 따랐던 우리를 정신 차리게 합니다. 주님에게 헌신한 것만큼 이 땅의 축복으로 보상받으려 했던 그릇된 욕심도 무너뜨립니다. 십자가는 이미 우리가 충분히 보상받았음을 알려 주는 은혜의 감동입니다. 교만은 노력해서 없어지는 게 아니라 갈보리 십자가 앞에 설 때 부서집니다. 겸손은 노력해서 갖춰지는 게 아니라 갈보리 십자가의 보혈을 통과할 때 생겨납니다. 그리고 우리도 주님처럼 우리의 모든 것을 내려놓게 하는 헌신자로 만듭니다. 야심은 교만한 자가 꾸는 세상적 꿈이고, 비전은 겸손한 자가 꾸는 하나님의 꿈입니다. 야심에서 비전으로 가는 거룩한 터닝포인트. 그것이 바로 주님의 십자가입니다.
십자가가 멀리 있을 때는 자기가 커 보입니다. 그러나 십자가 바로 앞에 서서 주님의 보혈을 목격하면 자기가 얼마나 작은지 깨닫게 됩니다. 자기 어머니까지 앞세워서 주님의 오른편 왼편에 앉고자 했던 요한의 야심과 경쟁심은 그날 십자가 앞에서 산산이 부서졌습니다. 자신의 생명까지 바치며 우리를 구원하러 오신 예수님의 십자가 사랑의 의미를 그제야 깨달은 것입니다. 그랬기에 요한은 그때부터 베드로의 뒤에 서는 것을 감사하게 받아들일 수 있었습니다. 우리도 십자가를 제대로 체험하고 나면 요한처럼
낮은 자리로 내려설 수 있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