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사기 11-12장에 나오는 입다는 입지전적인 인물입니다. 기생의 아들로 태어난 까닭에 형제들로부터도 쫓겨나 먼 이방 땅에서 죽을 고생을 하며 컸지만, “큰 용사”가 되어 암몬의 대군을 물리치고 나라를 구하여 이스라엘 전체를 다스리는 사사가 되었습니다. 이 페이스대로 계속 갔다면 그는 기드온을 뛰어 넘은 위대한 인물로 역사에 기록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인생 최고의 순간에 입다의 인생에 최악의 순간이 찾아옵니다. 승리를 위해 경솔하게 했던 서원으로 인하여 외동딸을 제물로 내놓게 되었고, 입다의 승리를 시기하여 찾아와 입다를 겁박한 에브라임 지파 4만 2천 명을 죽이는 끔찍한 일을 저지른 것입니다. 무례한 에브라임에게 복수하여 당장은 속이 시원했겠지만, 그다음부터 이스라엘 전체 지도자로서 이후 입다의 영향력은 땅에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그 후 성경은 입다의 사사로서의 나머지 생애를 딱 한 마디로 설명합니다. “길르앗 사람” 입다가 죽으매 “길르앗”에 있는 그의 성읍에 장사되었더라. 길르앗이 두 번 강조되는 데는 어떤 메시지가 있습니다. 입다는 이스라엘 전체를 다스리는 사사가 돼야 했었는데, 자신의 지지층인 길르앗만을 대변하는 지도자로 생을 마감하게 됩니다. 분노에 사로잡힌 나머지 다른 지파들과 내전을 벌였기 때문입니다. 동서양의 많은 지도자들도 보면 처음에 자리에 오를 때는 자기를 지지하지 않은 사람들도 다 품고 가겠다고 해놓고,
정작 권력을 잡고 나서는 반대파들을 향해 무자비한 정치 보복을 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결국 그는 나라의 반쪽만을 대변하는 지도자로 끝이 납니다. 해결되지 못한 분노는 용서를 불가능하게 만듭니다. 분노에 사로잡힌 리더십은 오래 가지 못합니다. 입다가 사사로 있었던 시간이 겨우 6년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이때까지 소개된 그 어떤 사사들보다 임기가 짧았습니다. 에브라임의 무례를 참으며 이스라엘의 화평을 지켜낸 기드온은 사사들 중에 가장 긴 40년을 다스렸습니다. 그러나 분노를 참지 못하고 형제들
을 칼로 공격한 입다는 6년밖에 사사로 살지 못하고 죽었습니다.
이것이 그냥 우연이겠습니까. 성경은 하나님이 쓰시는 지도자의 핵심 자질 중 하나로 온유와 겸손을 꼽습니다. 모세는 지면에서 가장 온유한 자라는 평가를 받았고, 예수님께서도 “내게로 와서 배우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다”고 하셨습니다. 지도자는 항상 반대하는 세력도 있고, 억울한 공격을 받게 되어 있습니다. 허나, 예수님을 닮은 지도자는 십자가 사랑을 생각하며, 분노를 억제하고, 먼저 자신을 다스립니다.
입다 이전까지의 사사들에 대한 기록을 보면 “그가 다스리는 동안 그 땅이 평온하였더라”라고 되어 있는데, 입다의 경우는 6년 사사로 있었다는 말만 있지, “그 땅이 평온하였더라”는 말이 없습니다. 외적 암몬은 물리쳤지만, 요단강에서 흘린 에브라임 사람들의 피가 평화를 깨뜨린 것입니다. 학자들은 입다의 재임 6년 동안 끊임없이 에브라임을 비롯한 형제들과의 반목과 싸움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합니다. 교회의 평안을 깨뜨리는 것은 꼭 외부의 요인이 아닙니다. 내부 형제 간의 불화가 더 큰 위협입니다. 형제끼리 불화하면 교회 안에서 평안을 누리지 못합니다. 우리가 서로의 약점을 덮어주고 서로 용서하고 화목하지 못한다면, 그것만큼 성령을 근심하게 하는 일은 없습니다. 훌륭했던 입다의 인생 전반전을 생각할 때, 그렇게 비참한 인생 후반전을 살 사람이 아니었기에 너무나 안타깝습니다.
분노의 노예가 되면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예비하신 위대한 꿈을 이루지 못하고 무너지게 됩니다. 우리는 어떤 상황에서도 분노를 이기고 화평케 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저는 우리 교회가 어떤 상황 속에서도 서로 용서하고 사랑하는 교회가 되기 바랍니다.
분노로 무너진 입다 리더십
목양칼럼 / 2025년 11월 0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