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태생의 유명한 유대인 정신분석학자 에릭 프롬은 1941년, 그러니까 2차 대전 발발 초기에 쓴 “자유로부터의 도피 (Escape from Freedom)”란 책에서 이렇게 물었습니다. “히틀러는 쿠데타로 집권한 사람이 아니라 독일인들이 민주주의 투표로 선출한 사람이다. 왜 독일인들은 나라를 멸망으로 몰고 갈 그런 무서운 독재자를 선택했을까.”
그것은 독일인들이 자유를 누릴 줄 몰랐기 때문입니다. 독일은 1차 세계 대전에서 패배한 후, 이런 파괴적인 전쟁을 일으킨 것은 황제 중심의 절대 군주제 때문이었다고 생각하고, 바이마르 민주공화정부를 세웠습니다. 그러나 모두가 자기 목소리를 내는 민주주의 체제는 전후 독일이 직면한 극심한 사회적 혼란과 경제 대공황을 헤쳐 나갈 수 없었고, 이에 불안해진 사람들은 다시금 모든 문제를 해결해 줄 강력한 지도자의 통치를 갈망하게 되었습니다. 비단 독일인들뿐 아니라 인간은 항상 정치적으로 양극단으로 왔다 갔다 하는 성향이 있습니다. 한편으론 모든 권위에 저항하면서, 자기 마음대로 살겠다고 집을 뛰쳐나오는 탕자 본능이 있지만, 그러다가 불안해지고 혼란스러워지면 다시 어떤 강한 자가 자기 문제를 해결해주고 다스려주길 바랍니다. 극단적 포퓰리즘과 절대 독재체제로 왔다 갔다 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에 왕이 없어 각자 자기 소견대로 행하던 혼돈의 사사시대. 이스라엘을 미디안 침략에서 구해낸 전쟁영웅 기드온에게 이스라엘 사람들은 왕이 되어 줄 것을 요청합니다. 기드온은 하나님이 너희를 다스리시는데 내가 어떻게 왕이 되겠느냐고 하면서 그 청을 지혜롭게 거절합니다. 하지만 그래 놓고 기드온은 왕이 누릴 수 있는 돈과 명예를 누립니다. 그로 인해 그의 사후에 백성들은 극한 우상숭배로 빠져들면서 타락합니다.
지도자의 자리는 사람을 은근히 교만하게 만듭니다. 딴 사람은 몰라도 나는 결코 안 변한다고 하지 마십시오. 사람은 항상 올라가면 무의식적으로 목에 힘주게 되어 있습니다. 자기가 백성들보다 더 잘난 사람이라는 착각에 빠지게 됩니다. 이런 위험으로부터 자유하는 유일한 방법은 늘 하나님 앞에 엎드린 예배자로 사는 것입니다. 우리는 늘 하나님 앞에 가까이 나와야 합니다. 겸손은 단순히 자기를 낮추는 겉으로 보이는 예법이 아닙니다. 겸손은 온유하신 주님과 항상 동행함으로써 자연스럽게 전염되는 성품입니다. 겸손은 하나님 말씀으로 늘 자기를 비춰볼 때 자연스럽게 스며드는 것입니다. 말씀을 통해, 하나님을 늘 가까이하는 사람이 사람들을 진정으로 섬기는 리더가 됩니다. 그는 이기적인 욕심이나 순간적인 감정에 따라 통치하지 않을 것이며, 권력을 이용해 개인의 영달을 추구하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의 왕이신 예수님을 보십시오.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셨으면서도 그는 자신을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습니다. 자기를 낮추시고 십자가에 죽기까지 복종하셨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그를 높이셔서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셨습니다.정권이 바뀔 때마다 우리는 새 지도자가 새로운 나라를 만들어 줄 것처럼 기대합니다. 그러나 얼마 못 가서 그 기대가 무너지는 안타까운 역사가 계속 반복됩니다. 권위주의에 저항하면서 자기들 마음대로 살겠다고 하다가도, 시간이 지나면 또 불안해서 다시 민주주의를 빙자한 독재자에게 열광하는 모순을 되풀이합니다. 동서양의 모든 정치 역사가 그렇습니다.
세상의 그 어떤 왕도 예수님 같은 왕은 없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비록 이 땅에 살지만, 영원한 왕이신 예수님의 다스림을 받도록 해 놓으셨습니다. 세상의 정치가 우리에게 실망을 줄 때마다 우리는 우리의 시민권이 하늘에 있음을 감사해야 합니다. 우리는 언제 어디서나 왕이신 예수님의 음성을 듣고, 주님의 다스림에 순종하며 살아야 합니다. 그것이 생명의 길입니다.
예수님의 리더십을 생각하며
목양칼럼 / 2025년 09월 0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