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안의 13만 5천 대군과의 전쟁을 앞두고 이스라엘에서는 겨우 3만 2천 병력이 모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것도 너무 많다”고 하시면서 기드온으로 하여금 다 돌려보내고 3백 명만 남게 하십니다. 그리고 그 작은 병력만 가지고 기적 같은 승리를 일궈 내십니다. 보통 우리는 함께 하는 사람 수가 줄어들면 불안해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오히려 확실하지 않은 사람들이 많이 모인 것을 더 못 견뎌 하십니다. 우리는 흔히 3백 명을 3천 명, 3만 명을 감당할 수 있는 종자씨 모임으로 삼는 경우가 많은데, 하나님은 3만 명을 오히려 3백 명을 추리기 위한 시작점으로 사용하셨습니다.
우리는 큰 규모일 때 하나님의 일을 더 잘할 것이라는 생각을 버려야 합니다. 하나님의 일은 머릿수로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으로 합니다. 큰 규모는 오히려 잘못된 교만의 원인이 됩니다. 돈이 많고, 재주 있는 사람들 많다고 반드시 영적으로 강한 것이 아닙니다. 성경을 보면 하나님은 뺄셈을 통해 덧셈을 하시는 경우가 많습니다. 많은 것을 우리에게서 가져가시는 것 같은데, 실은 진짜 좋은 것을 주시기 위해 가지치기를 하시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정예화된 소수는 대부대가 못하는 일들을 해냅니다.
구약성경에서 구원받은 자들을 일컬어 “남은 자 (Remnant)”라는 표현을 썼고, 신약에서는 “끝까지 견디는 자”라고 했습니다. 기드온의 3백 용사는 “끝까지 남은 자”라는 의미에서 오늘의 교회를 상징합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항상 “남은 자”를 통해 이루어져 왔습니다. 하나님만을 전적으로 의지하고 하나님의 뜻 안에 거하는 믿음의 소수들. 세상이 핍박하고, 마귀의 온갖 유혹과 시험이 몰아쳐도 믿음으로 견뎌낸 성도들. 주님께서는 교회 안에 알곡과 쭉정이가 섞여 있다고 하셨고, 이들이 계속해서 키질을 당하며 알곡만 남게 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13만이 넘는 엄청난 적군을 상대로 고작 3백 명의 군대가 나가 싸운다는 것도 말도 안 되는 일이지만, 적은 완전히 중무장한 군대인데, 이쪽은 “양식과 나팔”을 손에 들고 나갔습니다. 엄청나게 강한 세상의 힘에 맞서 나가는 교회와도 같은, 겉으로만 보면 상대가 안 되는 싸움입니다. 기드온의 군대가 든 양식과 나팔은 교회의 손에 쥐여 주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입니다. 말씀과 기도입니다. 우리가 이것을 들고 저 바벨론처럼 강대한 세상을 향해 담대히 나가는데 주님이 우리에게 승리를 주십니다.교회는 정예화 되어야 합니다. 정예화되기 위해서는 하나님께서 기드온의 3백 용사를 추리면서 주셨던 두 가지 기준을 기억해야 합니다. 첫째, 세상을 향한 두려움을 극복해야 합니다. 이건 인간적 의지와 노력으로는 불가능합니다. 예수님한테 3년 제자훈련 받은 제자들도 겟세마네 동산에서 다 주님 버리고 도망갔습니다. 그랬던 제자들이 오순절 다락방에서 성령 받고 담대한 복음의 사도로 바뀌었습니다. 사도행전의 제자들과 복음서의 제자들은 완전히 다른 사람 같습니다.
둘째, 교회는 깨어 있어야 합니다. 마지막에 뽑힌 기드온의 3백 용사들은 물을 마시면서도 사방을 살피며 적에 대한 경계심을 늦추지 않는 신중함을 보였습니다. 영적으로 깨어 있는 교회가 진짜 교회입니다. 세상 속에 살지만, 세속화되지 않으려면 정신 바짝 차려야 합니다. 세상 사람들처럼 당장 편하고 좋은 것, 돈 되는 것에 온통 마음을 빼앗겨서 살면, 물 마실 때 아예 물속에 얼굴 처박고 마구 마시다가 탈락한 사람들같이 됩니다. 말씀과 기도로 깨어 있는 사람들, 성령 충만하여 세상이 아닌 하나님만 두려워하는 제자들. 이렇게 정예화된 기드온의 3백 용사 같은 교회는 한 사람이 천 명을 쫓는 강한 교회가 될 것입니다.
기드온의 3백 용사 같은 교회
목양칼럼 / 2025년 08월 0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