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2장에 소개된 예수님 공생애 첫 번째 기적은 가나의 혼인 잔치에서 물을 포도주로 바꾸신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기적의 시작은 결코 쉽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가 포도주가 떨어진 난처한 상황을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께 알렸을 때, 예수님은 분명히 “아직 나의 때가 이르지 않았습니다”라고 거절하셨습니다. 어렵게 부탁한 것을 아들이 한 번에 거절하니까 불쾌할 만도 한데, 마리아는 여기에 대해서 아무 반응도 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돌아서서 하인들에게 지시합니다. “이 분이 너희에게 무슨 말을 하든지 그 말에 복종하라.”
어, 이건 뭔가 이상하지 않습니까. 분명히 예수님은 거절하셨는데 마리아는 마치 “예스” 하신 것처럼 그 다음 단계 일을 진행시킵니다. 하인들도 당황하고, 예수님도 당황하셨을 것입니다.
“예스”와 “노”가 분명한 미국이나 영국 교회 성도들은 이 상황을 잘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예수님이 분명히 “노” 하셨는데, 어머니 마리아가 왜 그러지? 그러나, 한국식 동양 문화에서는 이 상황을 어느 정도 이해할 수가 있습니다. 세계적인 문화 인류학자인 에드워드 홀(Edward Hall)은 인류의 의사소통 방식은 “저맥락 문화(Low Context)”와 “고맥락 문화(High Context)” 두 가지로 나뉜다고 했습니다. 저맥락 문화는 자기가 원하는 것을 직설적으로 명료하게 밝히는, 주로 서양권에서 자주 나타나는 문화입니다. 반대로 고맥락 문화는 함축적이고 돌려 말하는 문화로써, 한국을 비롯한 동양권에서 나타나는 문화입니다. 이 문화 차이를 이해하지 못하고 서로 대화하다 보면, 서양 사람들은 동양 사람들이 답답하게 말한다고 느끼고, 동양 사람들은 서양 사람들이 무례하다고 느낍니다. 동양 문화에서는 “예스”이면서도 겉으로는 “노”라고 말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스라엘 문화는 오히려 한국식 동양 문화와 더 비슷한 저맥락 문화에 가깝습니다.우리 한국 민족은 예부터 “예스”, “노”가 분명한 것 보다는 “괜찮다”(관계하지 아니하다의 준말)는 말을 더 많이 썼습니다. 그래서, 분명히 표현으로는 “노”라고 했는데, 실은 “예스”인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므로 이럴 때는 듣는 쪽이 눈치 있게 알아들어야 합니다. 이 본문도 그런 맥락으로 보아야 좀 이해가 될 것입니다. 성경에 보면 예수님이 처음엔 “노”라고 거절을 하시다가도 나중에는 “예스”하고 허락하시는 경우가 의외로 많습니다.
가나의 혼인 잔치에서도 마리아는 예수님의 거절에 흔들리지 않고 오히려 하인들에게 응답 받을 준비를 시켰습니다. 우리도 때론 기도할 때, 주님이 거절하시는 것 같은 느낌을 받을 때가 있습니다. 주님이 무관심하신 것 같고, 화나신 것 같기도 한 기분이 들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쉽게 포기해선 안 됩니다. 내가 처한 상황 그대로 주님께 고하고,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따르겠다는 자세로 엎드려 보십시오. 겉으로는 “노” 하시는 것 같지만, 실은 주님은 사랑하는 자녀들의 그 어떤 간절한 기도도 귀담아들으시는 분이십니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들의 모습을 보면 주님이 처음에 거절하시더라도 낙담하지 않고 계속 매달릴 수 있는 기도의 배짱, 기도의 뒷심이 약한 것 같습니다. 주님이 처음엔 거절하시는 것 같아도 믿음으로 끝까지 구해야 하는데, 몇 번 해 보고 소식이 없으면 “에이 안 되나 보다” 하고 포기를 해 버리는 게 문제입니다. 만약 지금 여러분이 그 상황이라면 다시 한 번 포기한 그 자리에 달려가서 주님께 간구해 보십시오.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매달리는 사람, 우리 주님이 절대 싫어하며 밀쳐 버리지 않으십니다. 처음에 거절하신 것처럼 보이는 기도도 때가 되면 주님이 주십니다. 내가 생각하는 방법이 아닌 주님만의 특별한 방법으로 주실 것입니다. 이것을 믿으면 기도하는 우리 마음에 힘이 날 것입니다.
예수님의 “노(No)”를 믿음의 “예스(Yes)”로
목양칼럼 / 2025년 04월 0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