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나서는 짧지만 그 강렬한 스토리를 모르는 사람은 하나도 없을 만큼 유명합니다. 니느웨로 가서 하나님의 말씀 전하라는 명령을 거부하고 반대편 다시스로 가는 배를 타고 도망가는 요나를 하나님은 사랑의 추적자가 되어 무섭게 쫓아오셨습니다. 어지간하면 불순종한 요나를 버리고 다른 사람을 대신 들어 쓰실 수도 있었을 텐데 하나님께서는 지중해 바다 전체를 폭풍으로 뒤집으시면서까지 끝까지 요나로 가겠다고 하십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은 이렇게 무섭고, 이렇게 후회하심이 없으십니다.
폭풍의 바다와 물고기 뱃속은 무시무시한 고난이었지만 그 고난으로 인해 요나가 영적으로 깨어나게 됩니다. 요나는 하나님이 처음 부르셨을 때에도, 다시스로 도망가는 배를 탈 때에도, 폭풍에 흔들리는 배에서 제비뽑기에 걸렸을 때도 기도하지 않았습니다. 그런 그가 캄캄한 물고기 뱃속에서야 기도가 터져 나왔습니다. 기도가 깨어났다는 것은 영성이 다시 깨어났다는 뜻입니다. 한때 북이스라엘의 왕과 신하들과 백성들 모두가 존경하던 선지자 요나의 믿음이 다시 깨어난 것입니다. 삼일 밤낮을 물고기 뱃속에 있었다고 한
것으로 미루어 보아, 요나가 진정으로 부서지고 낮아져서 자기 죄를 회개하는 기도가 터지기까지 그 정도 시간은 걸린 것 같습니다. 우리가 깨어지는 데는 얼마의 시간이 필요할까요.물고기 뱃속에서 터지기 시작한 요나의 기도는 처절한 부르짖음이었습니다. 3일 동안 컴컴하고 냄새나는 물고기 뱃속에서 너무 절박하니까 피를 토하듯이 부르짖는 기도했을 것이니 통성기도 했을 것이고, 물고기 뱃속에서는 아무것도 못 먹고 기도했을 것이니 금식기도였을 것이며, 잠깐잠깐 잠들었던 시간 외에 깨어있는 시간은 다 기도했을 것이니 새벽기도이며 철야기도였을 것입니다. 말하자면, 요나는 거기서 우리가 할 수 있는 필사적인 기도를 다 했을 것입니다.
요나의 기도는 교회를 중심으로 한 기도였습니다. 요나는 “주의 성전을 바라본다”는 말을 그의 짧은 기도에서 두 번이나 반복합니다. 오래전 솔로몬왕의 성전 봉헌기도에서부터 이스라엘 사람들은 항상 위기의 때에 성전을 향해 기도해야 함을 알고 있었습니다. 자신들의 죄로 인해 역병이 돌던지, 기근이 임하든지, 전쟁에 져서 외국에 포로로 끌려가든지, 어떤 처참한 상황에 빠져있든지 간에 성전을 향해 회개하며 부르짖으면 하나님께서 반드시 살려 주실 것을 믿었습니다. 특히 요나는 성전의 속죄소에서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말씀하실 것을 믿었습니다. 언약궤의 뚜껑인 속죄소위에는 죄를 회개하고 있는 사람들을 위해 어린양의 피가 뿌려집니다. 속죄소 기도는 교회의 머리이신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의 은혜를 의지하는 기도입니다. 요나의 기도는 후반부로 가면서 점점 더 단단해졌습니다. 마침내는 하나님께 이미 구원받은 것처럼 감사를 선포하고, 서원을 지키겠다는 헌신을 선포하는 담대한 기도로 결론을 내리게 됩니다. 기도하는 사람이 기도를 만들지만, 기도하다 보면 기도가 기도하는 사람을 만들어 갑니다. 기도하기 전에는 두렵고 불안하던 마음도 성령의 도우심으로 불 같은 기도를 한 뒤에는 단단한 믿음의 마음으로 바뀌게 될 것입니다. 극심한 핍박에 시달리던 초대교회 성도들은 카타콤이라는 지하 무덤에 모여 살며 신앙을 지켰습니다. 그리고 자신들의 신앙고백을 벽에 그림이나 글로 남기곤 했는데, 카타콤 벽에 예수님 다음으로 자주 볼 수 있는 인물이 요나라고 합니다. 물고기 뱃속의 절망 같은 상황에서 하나님께 결사적으로 회개기도 하여 살아난 요나를 보면서 초대교회 성도들도 소망을 가졌던 것입니다. 한 해를 시작하면서, 너무나 불안하고 힘든 세상 한가운데서 우리 한국교회 성도들도 요나의 기도를 따라 해야 할 때라고 생각되지 않습니까.
새해에 요나의 기도가 필요합니다
목양칼럼 / 2025년 01월 0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