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가 생각케 해 준 죄에 대한 소고 (小考) 목양칼럼 / 2022년 04월 01일

코로나 사태를 보면서 저는 이것이 인간의 죄를 상징하는 영적 메시지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먼저 코로나 발단부터 살펴보면 인간의 잘못에 기인한 탓이 큽니다. 야생동물과 인간은 엄연히 경계선을 두고 살게 하나님이 만들어 놓으셨습니다. 그런데 인간들의 무분별한 환경파괴로 인하여 그 경계선이 무너지면서 우리도 바이러스에 감염된 것입니다. 코로나도 그렇지만, 그 이전에 메르스, 에볼라, 사스도 다 마찬가지였습니다. 죄도 인간이 하나님을 불순종하여 따 먹지 말아야 할 선악과를 따 먹은 데서부터 시작됐습니다. 그리고 그로 인해 우리 영혼을 죽이는 바이러스가 전 인류에 퍼진 것 아닙니까?

둘째, 코로나는 전염성이 강합니다. 델타나 오미크론 같은 변종 코로나 바이러스는 전염성이 더 강합니다. 조금만 긴장을 늦춰도 순식간에 퍼집니다. 어디서 걸렸는지 모르게 걸립니다. 자주 접촉하는 가까운 사람들을 통해서 걸릴 확률이 더 높습니다. 그냥 주변 환경이 그렇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걸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죄가 그렇습니다. 전염성이 얼마나 빠르고 강한지 모릅니다. 죄로 가득한 세상에서 살기 때문에 우리는 언제 어디서 걸리는지 모르게 죄의 영향을 받고, 생각과 마음이 병들게 됩니다.

셋째, 코로나가 가져온 가장 큰 고통은 사회적 거리두기입니다. 어디 가서 앉을 때도 거리를 두고 앉아야 합니다.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것도 사회적 거리두기 때문에 잘 못합니다. 모이지를 못하니 함께 웃고 울고 할 수 있는 기쁨이 사라져서 모두가 우울증과 외로움을 호소합니다. 오죽하면 국민 절반이 정신 질환을 앓고 있다는 말까지 나오겠습니까? 죄가 그렇습니다. 죄는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거리를 만들더니, 그것이 사람과 사람 사이에 거리를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에베소서에 보면 “죄로 인하여 멀리 있던 우리가 그리스도로 인하여 가까워 졌느니라”고 했습니다.

넷째, 마스크 문화입니다. 코로나로 온 나라가 고생한 지난 2년 동안 우리는 마스크를 쓰고 서로를 대하는 일에 익숙해져야만 했습니다. 처음에는 너무 불편하던 마스크가 어느새 외출할 때는 스마트폰과 함께 반드시 집어 들게 되는 생활 필수품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어쩐지 저는 아직도 마스크 쓰고 다니는 것이 너무 답답하고 불편합니다. 우리가 불편해도 마스크를 쓰는 이유는 우리 모두가 코로나를 전염시키거나 전염될 수 있는 위험 때문입니다. 즉, 우리 모두가 가해자가 될 수도 있고 피해자도 될 수 있기 때문에 마스크를 씀으로써 나를 지키고 상대를 지키자는 것입니다.

그 취지는 알겠지만, 서로 반쪽짜리 얼굴을 대하면서 살아가자니 너무 답답하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런데 죄도 그런 것 같습니다. 죄로 인해서 우리는 서로에게 상처를 줄 수도 있고 받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 두려움 때문에 우리는 서로 가면을 쓰고 자신의 속내를 완전히 드러내지 않으면서 조심하며 살아가는 게 아닐까요? 죄인일수록 다른 사람을 의심하고 거리를 둡니다. 자기를 지키고 상대를 지킨다는 미명하에 우리는 오히려 더욱 서로를 믿지 않는 삶을 살게 되는 것 같습니다.

다섯째, 코로나를 해결할 수 있는 길은 백신을 맞거나 치료제를 맞는 길 뿐입니다. 마찬가지로 죄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백신 혹은 치료제는 예수님의 보혈 뿐입니다. 내가 노력하고 애쓴다고 되는 게 아닙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 보혈의 은혜로 우린 죄에서 구원받습니다.

코로나로 인해 2년간 온 세계가 정말 죽을 고생을 해 왔습니다. 그런데 어쩌면 하나님께서 우리 모두에게 코로나와 죄의 상징적 의미를 은연 중에 깨닫게 하시는지 모르겠습니다. 힘든 시간이지만 모두 용기를 내고 이겨냅시다.